이야기 67. X세대가 X 되었다

이야기 67. X세대가 X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메일의 뉴스레터를 뒤적거리다가 이코노미스트에서 배달된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Why Gen X is the real loser generation: Don’t cry for millennials or Gen Z. Save your pity for Generation X” – 우리말로 하면 ” 왜 X 세대가 진짜 패배자 세대인가 : 밀레니얼 Z세대는 됐고, X세대나 좀 챙겨라” 정도가 되겠다. 왜 X 세대를 패배자라고 하는가.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 고민 많은데 어디가서 말하지 못하는 나와 내 또래 친구들 이야기 같아서 이 기사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적어보고 싶었다. 

잊혀진 혹은 잃어버린 세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최근까지도 온 세계의 비즈니스들은 MZ세대(밀레니얼과 Gen Z; 그들은 자신들을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함에도 불구하고)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90년대생이 온다’는 책을 시작으로 새로 사회로 진출할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과 일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이 세대를 위한 연구, 교육, 상품 개발 등 무엇이든 MZ를 어디엔가에 붙여서 하고자 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무엇이든 AI라는 단어를 넣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금의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때 이 땅에서 X세대들이 주목받던 시대가 있었다. 1990년대, X세대가 모든 관심을 받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당당하게 외친 세대였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00만 장 넘게 팔리고,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철학을 논하고, 김건모가 흑인 음악을 들고 나타났을 때 기성세대는 충격을 받았다. 이전까지 젊은이들은 조용히 어른 말을 듣고 획일적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염색한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단순히 반항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문화와 경제를 움직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PC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X세대는 PC통신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었다. 압구정과 강남은 이들에 의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렌지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들의 영향은 기술 분야에서도 두드러졌는데 19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X세대였고,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들이다. 그 세대가 이제 기득권이 되어 어른이 되었고, 지금의 K-문화 DNA를 만들어냈음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세대가 잊혀진 세대 혹은 잃어버린 세대라는 것일까?

앞에서 언급했던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X 세대(1965-1980년생)는 구글의 검색 양을 봐도  밀레니얼(1981-1996년생), Z세대(1997-2012년생), 베이비붐(1946-1964년생)에 대해 절만에 미치지도 못하고,  팟캐스트나 밈도 거의 없고, 이 세대를 다룬 책도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X 세대는 대중적 상상력 속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대중 문화나 미디어에서 이 세대의 경험과 가치관이 충분히 대변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긴, 우리나라의 X 세대도 ‘꼰대’ 혹’은 ‘라테세대’ 정도의 존재감이랄까. X세대는 말 그대로 ‘X’—지워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말 밀레니얼보다 X세대가 부유한가?

현재의 기득권 처럼 보이는 X 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최근 30개국에서 실시된 입소스 여론 조사(입소스 Ipsos는 세계 3대 여론조사 기업 중 하나로, 글로벌 신뢰도 조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에서 X 세대의 31%가 “별로 행복하지 않다”거나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다.이는 다른 다른 어떤 세대보다 높은 수치이며, 결정적으로 그 원인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에 있다는 것에,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주목을 하고 있다.  

인생의 U자형 곡선(U-bend of life) 이론이 있다.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만족도가 전체 연령에 걸쳐 평균적으로 U자 형태를 그린다는 개념인데, 젊거나 나이 든 시기에는 행복하지만 중년에는 불행하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는 40대 전후 중년에 행복감이 가장 낮아지고, 이후 50대 이후 노년기로 갈수록 다시 행복도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년이 대체로 불행한 이유는 만성적인 건강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부양에 따른 경제적 부담 또한 경력에서 기대했던 모든 것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에 이 같은 곡선이 그려지는데, 이는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이의 세대들이 모두 겪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X 세대의 경우, 자녀와 부모 세대를 모두  돌봐야 하는 상황(샌드위치 세대)이 다른 세대보다 두드러지며 따라서 경제적 부담은 어느 세대보다 크다. (8세 미만 또는 65세 이상 부양에 베이비붐 세대는 지출의 2%를 사용한 반면, X 세대는 5%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시기가 길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X세대는 U자 곡선을 벗어나더라도 여전히 패배자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한다.  조금 더 우울한 소식이 있다. ‘2024년 우리금융 트렌드 보고서-X 세대의 생활’에 의하면 한국 X세대의 약 43%는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며, 이 경우 전체 소득의 약 25%를 부양 지출로 사용하고, 자녀 또는 부모만 부양하는 경우에 전체 소득의 10~17%를 해당 지출에 사용한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제시된 또다른 차트를 한번 보자.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Leaving at 5pm has consequences)”는 제목인데, X 세대가 기존의 선배세대보다 일벌레가 되는 것을 꺼리고 워라벨과 자율성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것을 비꼬아서 말하고 있다. 

요약하면 X들은 다른 세대들에 비해 부유하지 않다. 현재의 기득권처럼 보이는 X 가 알고보면 다른 세대들 보다 자산 축적에 있어서 부진한 성적을 보인다.

[인용] https://www.economist.com/finance-and-economics/2025/05/08/why-gen-x-is-the-real-loser-generation

첫 번째 그래프 : 소득 이야기 – X 세대는 나이를 먹어도 자산이 천천히 증가한다. 

가로축(x)는 연령, 세로축(y)는 소득으로  X세대의 소득 증가 곡선이 다른 세대에 비해 현저히 완만하게 증가한다. 즉,  X세대는 현재 가장 높은 월급을 받는 세대일 수 있으나 나이를 먹은 것에 비해 월급은 별로 안 올랐다는 뜻이다. 기사에 따르면, 지금 31살인 밀레니얼들이 과거 31살이었던 X세대보다 두 배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한 실질 비교로, 젊은 세대가 과거 X세대보다 더 나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졸 신입 직원들도 과거 대비 높은 수준의 급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들 중 어떤 이들은 가파르게 급여를 올리는 기술을 배운다. 가끔은 일을 배우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다. 하긴, 모든 세대에 이런 이들은 항상 있었지만, 학습능력이 좋은 젊은 세대들은 기존 선배들보다 이 마저도 훨씬 더 빨리 배운다.   

두 번째 그래프: 집 소유 이야기 – “요즘 젊은이들만 집을 못 산다”는 말은 틀렸다

가로축(x)은 나이, 세로축(y)은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다.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선이 거의 똑같이 그려진다. 40대가 되면 모든 세대가 비슷한 비율(60-80%)로 집을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만 집을 못 산다”는 건 사실이 아니고, 집 사기 어려운 현상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X세대부터 이미 시작된 구조적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X세대의 경우, “인간다운 삶”을 추구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뒤처졌고, 이제 그 “인간다운 가치관”이 사회 표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이중의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셈이다.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했으나, 그 선택에는 예상치 못한 사회적인 비용이 따르게 되었다. 우리 선배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성장 우선 주위를 선택한 대가로 예를 들면 “일이 최우선, 가족은 나중에” 라고 믿었던 삶의 방식이 정작 노년에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밀레니얼이나 Z 세대 역시 그들이 선택하였음으로 그들이 감내해야할 대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어느 세대가 어느 세대를 책임져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대한 인지와 인정, 관심이 필요하며 각 세대들이 가진 역량으로 시대가 처한 문제들을 각자의 방식과 관점으로 풀어가야 한다.  우리가 맞이한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경험과 관점이 다른 각 세대들이 하나의 정답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AI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X가 아닌 해답: AI 시대 X세대의 역할

그렇다면, X세대는 이 격변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하나?  X가 부유해지는 법에 대해 말할 수 는 없을 것 같지만, 최소한 직장인 혹은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X세대들이 데이터와 AI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X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르는 걸 그만했으면 좋겠다. ‘샌드위치 세대’ 라는 프레임 안에서 수동적으로 이 세대를 가두고 끼워놓고 책임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 X세대는 끼어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에 서 있다.

생각해보자. 2025년 현재, X세대는 45세에서 60세 사이로, 조직에서는 핵심 의사결정권을 가진 계층이다.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마지막 세대이면서, 동시에 AI 시대가 오는 걸 지켜보면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과 판단력을 가진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어린 세대들처럼 무작정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기성세대처럼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는다.

완전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기에, 인간적 소통과 아날로그적 사고의 가치를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으며, 동시에 디지털 시대를 직접 겪어봐서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현실적으로 알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이주 온 이주민으로서 아날로그의 삶과 디지털의 삶에 대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이미 탑재되어 있다는 것은, 이 AI 시대에 축복이다. 

X세대가 X된 것은 맞다. 하지만 수학에서 X는 미지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지수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반드시 구해야 하는 값이다. 여러분은 “X세대”라는 단어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X를 정의하기 힘든 세대이기 전에 “사회적 압력, 돈, 지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였던 것을 아는가? 기존 세대들이 갖지 못했던 가치관을 지향했던, 존재한 적이 없던 세대여서 X 였던 것이었다.

AI 시대의 복잡한 방정식에서 X세대는 핵심 변수다. X세대는 아날로그 직관과 디지털 논리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로서, 이제는 사회적으로 어른의 위치가 된 세대로서 AI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기준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계의 차가운 효율성과 인간의 따뜻한 비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는, 그런 역할 말이다. X세대가 바로 AI와 인간 사이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첫 번째 통역사다.

이제 X세대가  ‘정의하기 어려운 세대’가 아니라,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AI의 시대에, X값을 구할 수 있는 ‘시대의 답을 찾아가는 세대’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X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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